겨울은 날은 춥지만

 

밤하늘에 밝은 별이 유독 많은 계절이라서

 

천체 관측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나름의 로망이 있는 매력적인 계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북반구 쪽 내가 살고 있는 위도 쯤에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할 수도 있겠다.)

 

 

 

 

 

 

홀로 탁트인 공터에서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을 때면

 

어딘지 모르게 벅차오르는 마음 한 켠으로

 

외부의 차가운 공기가 내면까지 들어와서인지

 

어쩐지 쓸쓸하거나 공허한 기분이 불쑥 올라오곤 한다.

 

추운 겨울밤의 기운을 쫓으며

 

최소 수백년 전부터 달려왔을 별빛들이 아스라히 번지는 것을

 

하염없이 보다가

 

막막함과 위로가 뒤섞인 채 돌아와 곤히 잠들던 때도 있었다.

 

 

 

 

 

 

오늘 베텔기우스가 많이 어두워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꽤 예전부터 있던 베텔기우스 초신성 폭발 떡밥이 다시 스물스물 올라오던데

 

여하간 관측 사상 가장 어두운 것 맞는 사실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미 다 폭발했을 수도 있다. 초신성 폭발 전에 별들은 갑자기 어두워지곤 한다.

 

그냥 변광성인 베텔기우스의 일시적인 밝기 변화에 괜한 호들갑 떠는 것일 수도 있고....)

 

오리온 별자리는 어쩐지 예전부터 늘 항상 특별하게 느껴지곤 했는데

 

대낮같이 밝은 도시의 밤 한 가운데서도

 

빛나는 성광이 감추어지지 않아

 

내면 밑바닥에 잠시 넣어둔

 

항상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듯한 조급함까지 내리비추어

 

잠시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헛헛함을 달래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만약 베텔기우스 초신성 폭발의 순간을 내 생애 내에 조우할 수 있다면,

 

아니 사실 단 한 순간이라기에는 약간은 긴 시간...

 

아마 약 2주간은 낮에도 보일 만한 거대한 빛의 폭발일 터이지만

 

우주적 관점에서는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기에

 

순간이라는 표현이 여전히 더할나위 없이 적합할 것이다.

 

여하간에 그 순간을 조우한다면 이는 실로 범상치 않은 일임이 틀림없다.

 

최소한 피라미드를 지었던 고대인,

 

아니 미처 현생 인류로 진화하지 못했던 그 때부터 

 

현대에 살아가는 그 누구도

 

베텔기우스의 최후는 여지껏 본 적이 없는 매우 특이한 사건이며

 

아마 우리 세대는 베텔기우스를 실제로 본 마지막 세대이며

 

동시에 베텔기우스의 최후의 모습까지 본 유일한 세대가 될 것이기에

 

이는 매우 각별힌 순간임에 틀림없다.

 

 

 

 

 

사실 그 순간을 우리가 알아차릴 때쯤

 

실제로는 대략 650년 전쯤에 이미 모두 정해진 사건이고

 

지금 남아 있는 건 별의 잔해일 뿐이겠지만

 

이미 어딘가쯤에 결정되어 버린 나의 삶의 종말의 순간이

 

수백광년을 지나 어딘가쯤 그 누군가에게 도달했다는 관점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는 존재했던 그 시간만큼 그 모든 것이 계속해서 우주를 가로지르며 

 

무한히 퍼져나갈 것이라는 것 역시 깨달을 수 있다.

 

 

 

 

 

즉 아주 보잘 것 없는 먼지 같은 존재의 하루하루라 하더라도

 

실로 영원히 발생한 일이 없기도 하며,

 

영원히 존재하고 있기도 하며,

 

영원히 최후의 순간 너머에 있기도 하다.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여전히 아무 감흥이 없다면

 

그것은 더이상 내가 아닌 듯 하고

 

나의 우주 역시 없어진 셈이다.

 

좋아했던 노래, 좋아했던 영화, 좋아했던 책의

 

좋았던 부분을 다시 돌려보듯이

 

어딘가 이 우주의 시공 안에는

 

아주아주 작지만 나의 좋았던 순간들도

 

틀림없이 남아 있을 것이며 영원히 퍼져나갈 것이다.

 

 

 

 

한편으로 우주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것들은

 

매우 평범하고 흔한 일이며, 때때로 이미 다 결정되어 있는 사건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존재의 순간들이

 

조우하는 시점을 경험한다는 것은

 

나의 인식 안에서는 여전히 범상치 않은 일이며 기적같은 일이다.

 

돌이켜 보건대 그것은 매순간

 

아니 영원히 그랬던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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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 결정을 내리면서 살고 있지만

 

실은 그 순간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일 때가 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순간이 그럴 것이다.

 

 

 

 

 

 

이제는 내 인생의 조각이 조금씩 결정되어

 

되돌릴 수 없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오면

 

약간의 답답한 기분과 함께

 

기존에 생각하고 믿었던 방향에 대한 의문이 슬그머니 생긴다.

 

 

 

 

 

지나온 길을 반추해보자면

 

참 희한하게도 일이 풀렸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 때도 있고,

 

그런 인지의 한편에는

 

결정되어버린 오늘의 하루가 만족스럽지 않은데서 오는 우울함도 있다.

 

 

 

 

 

약간 취해있을 때, 아직 무언가에 대한 믿음이 굳건할 때

 

삶이란 좀 더 의욕적이고, 희망 차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약간의 어리석음과 무지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이기도 했다.

 

 

 

 

나는 나에게 

 

그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내면의 강함과

 

삶을 풀어나가는 방법에 대한 지혜가 있길 바랐지만

 

지금 이 순간 돌이켜보자면

 

과연 내 생각대로 해 나간 것인지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내 삶을 움직여왔는지 잘 모르겠다.

 

나의 지난 생각들은 모조리 미숙해보이고

 

내가 생각했던 미래는 내가 겪어온 과거와 결코 비슷하지 않았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방법론이 틀린 때도 많았고

 

내가 택한 길보다 더 좋은 길은 수없이 많았으며

 

그리고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음을 절절히 자각하는 이 순간.

 

약간 위축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지금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들이 맞는 것인지

 

미래에도 그것이 변하지 않을 것인지 

 

아무런 확신이 없으며,

 

이것은 실은 원래 예전부터 그러한 것인데

 

다만 내가 몰랐을 따름이다.

 

 

 

 

 

 

이러한 인지가 낯설고 두려워

 

혼란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가

 

그러다 문득 표현하기 어려운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비로소 어떤 선택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선택했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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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은 지혜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일종의 혜안이나 통찰이라고 해야 하나,

 

혹은 경험과 인맥의 축적이라고 해야 하나.

 

 

 

 

 

대담한 상상력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떠도는 사람들을 엮고

 

불리하면 판을 흔들고

 

유리하면 세를 키우고

 

혼돈함 속에서 하나의 길을 낸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진짜 뜻을 펼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태 잘 몰랐던 거 같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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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틈이 날 때 유튜브를 자주 본다.

 

진정한 신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쏟아지는 정보의 폭우 속에서

 

작은 실마리들을 엮어 나만의 방주를 만들다 보면

 

세상에 내가 이렇게 게으르고 부족한 풋내기였구나

 

깊이 자각케 된다.

 

 

 

 

고교시절에는 후회를 모르고 살았다.

 

그야말로 최선이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대학시절에는 때때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했다.

 

근래에는 오늘의 내가 한 생각과 행동들이 

 

최선이라는 기대감 자체가 거의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괴감으로 채워진 실망같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도리어 차분한 현실인식이고,

 

아직도 나는 희망을 잃지도, 노력을 멈추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무지의 축복 속에서 괴로워하다 

 

그대로 끝나는 게 삶일지라도

 

긴 가뭄에 바싹 마른 너른 황야의 

 

아직 마르지 않은 깊은 우물들에 의지하여

 

한 고비 고비 지난다.

 

아주 오랜만에 부질없는 글 한 조각 남기는 것도

 

언젠가 마신 그 우물의 맛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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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열심히 몸부림쳤던 것임을 알았다.





흘러가는 세월에 그저 실려갈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지나가다 본 


어느 모래톱 어귀에 엉겨붙은 찌꺼기처럼 


그렇게 썩어갈까봐 겁이 났다.





제법 운이 따라주었다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고 분명히 더 큰 몸집의 내가 


더욱 가열차게 몸부림쳐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몸부림,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몸부림,


그 몸부림은 좀처럼 끝이 보이질 않는다.





우두커니 흔들리는 혼불을


지키고자 하는


생의 감각이 오늘 하루도 진하게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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