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꾸려나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궁극의 명제에 도달한다.
"모든 것은 결국 운에 달려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선택의 그 순간들을 복기하면서
어느 때는 마음 속의 흔들림과 불안에 초연할 수 있었다면,
어느 때는 내가 바라보는 면 이외의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면,
생각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모순된 관점을
하나의 인간, 하나의 삶에 담아내는 그 과정 자체가
우리가 마주한 일종의 인생의 공리(公理)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 선택으로 이루어진 듯 하지만
우리에게는 타고난 유전적 특성과 주어진 환경이 있고
한정된 자원과 배움, 경험 안에서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부분은
역시 타고난 기질에 의거하여
행동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점에 대해서
마음 속에 새기고 행동하다보면
삶의 방향성은 대체로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1. 대개 삶의 진리는
무모순성이 담보되는 어떤 수학적 공리의 속성이라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는
모순과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2.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
위와같은 관점에서의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시각과 경험 내에서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그마저도 내가 속한 집단과 타인의 관점에 휩쓸려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이 역시 이율배반적인 것은
반드시 최선도 아니지만 반드시 최악인 것도 아니다.
3. 빠르게 결단할 것인가, 더 살펴볼 것인가
대세에 따라갈 것인가, 역발상을 택할 것인가
이득을 따라갈 것인가, 의리를 따라갈 것인가
논리를 따라갈 것인가, 직감을 따라갈 것인가
보이는 것 그 이상의 훌륭한 결단을 내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4. 결국 운이란 것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그런 중첩된 확률과 복잡계의 세계의 법칙과
거의 사실상 동치된 개념이라고 볼 때,
이에 대처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남은
거의 유일한 방법은
그 세계 속에서 매번 삶의 순간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노력하고, 더 시도하는 것.
즉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을 택하는 것이다.
허울좋은 탐욕이나 집착과 구분되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꽤나 맞는 방향을 찾아내고
나의 선택을 맞는 선택으로 만들어나간다.
이 역시
앞서 말했듯 모든 삶의 진리에 내포된
때에 따라 정오(正誤)가 갈라지는 속성이긴 하지만
모든 일에 시작이 있었듯이
그대가 바라는 삶에 도달했을 때
분명히 어느 요소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율배반적인 것은
이 세계가 나의 삶을 결정하는 모든 요소를 갖추었듯이
이 세계 역시 내가 선택하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다시 결정되어 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