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것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의 평정을 지키기란 참 어렵다.
예전에는 완벽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했다면
근자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게 된다.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가 더 많아져서 가 아니라
능력 이상의 것을 취하려는 행위의 결과가
대개의 경우 매우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무지할 때는 항상 희망을 보았고,
때때로 그 덕에 나아가고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조금 더 알고 나서 보니
내가 거두었던 성과들의 원인은 내 생각과는 전혀 별개인 곳에서 시작한 경우도 많았다.
모든 것을 운수 소관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때때로 실로 그러한 거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을수록
역설적으로 모두가 그러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어지고
결국 모든 일이 그저 운수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수준으로 귀결되게 된다.
그리고 대체로 한 인생도 그렇고, 한 사회와 국가, 인류의 역사가 그러하듯
예측할 수 없는 그 사건들이
모든 것을 변화시켜버릴 때가 많다.
성장하는 곳에서는 평균을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성장하지 않는 곳에서는 그곳을 벗어나거나
벗어날 수 없다면 압도적 비교우위를 갖추는 수 밖에 없다.
어찌되었건, 중요한 것은 깨지지 않는 것,
계속 생존하는 것이다.
한 때의 위대한 승자는 시대의 치우침에 최적화된 결과이고
그러한 최적화는 역설적으로
다른 시대가 도래하면 비효율로 다가온다.
삶에 있어서 약간의 느슨함이 필요한 이유 혹은
늘상 새로운 것에 열려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할 수 있겠다.
누구나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성과가 생존을 담보하지 않기에,
그렇지만 흘러가는 세상의 대다수는
생존을 위해 시간을 쪼개어 삶을 분배할 수 밖에 없다.
의식하지 않으면 대체로 기질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내가 온전히 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오롯이 나의 기질에 대해서까지 알게 되는 것이다.
의식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 역시 기질대로 정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이 그의 기질에 맞추는 것 또한 아니기에
결국 의식을 하든 안하든 시대는 운수소관으로 흘러간다.
성공의 기질이란 것 또한
시대의 추세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기민함,
최악의 순간이라 느낄 때 미래의 희망을 보고
최고의 순간이라 느낄 때 미래의 위험을 생각할 수 있는 지혜,
그리고 끊임없이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비효율을 찾는 부지런함,
묵묵히 순간순간들을 채워나가는 믿음과 뚝심
같은 것들이 시대와 조우했을 때 드러난다.
나의 판단과 선택이 결정한 거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에 있는 나의 기질의 왜곡 또한 타고난 운수같은 것임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시대가 그를 선택했을 뿐이며,
도도한 자연선택은 여지껏 수십억년을 거쳐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어왔다.
결국 보잘 것 없는 내가 항상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기질을 들여다 보며,
계속 시도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