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화에 미친 사람에게 한의학 치료를 권하고 싶은 개인적인 이유

 

얼마 전에 화상으로 현재 내가 진행하는 일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일이 있었다. 그 때 이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최적화의 보편성'이라고 답했는데 문득 한의사로서 내가 한의학을 사람들에게 권해보고 싶은 가치 또한 여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학을 공부하고 임상을 하면서 재미있는 부분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한의학이란 학문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개체 특이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점은 '최적화'와 '예방의학'이라는 맥락 속에서 장점이 극대화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똑같은 감기 바이러스로 인한 증상이 나타났을 때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과 병정이 있더라도, 실제로 환자에게 나타나는 세부적인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때가 많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열과 몸살기운으로 힘들어 한다면, 누군가는 콧물과 기침이 나타나고, 누군가는 인후통을 강하게 호소할 수 있다.

 

이 때 대응법은 범용적으로 각 증상의 기전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약을 먹으면 될 것이다. 열과 몸살이 우선이라면 아세트 아미노펜, 콧물이 주면 항히스타민제, 기침이 위주면 덱스트로메트로판, 가래가 있다면 아세틸시스테인 등을 생각해볼 수 있고, 이것을 다시 조합해서 종합감기약을 먹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한의학에서 처방을 하는 방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래가 있으니 길경을 넣고, 기침을 하니까 행인을 넣고, 몸살기운이 있으면 마황이나 계지를 넣고, 콧물이 나서 반하나 세신을 넣고 하는 식으로 처방을 하거나 혹은 이미 완성된 처방 중 각 주 증상에 맞는 적합한 처방을 골라주기도 한다.

 

여기서 대체로 양방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꽤 많은 경우가 있는데 한방적으로 기혈부족, 진액부족으로 표현하는 증상들인데, 무기력, 마른기침, 구건, 심계, 오한, 몸살, 식욕부진 등의 증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기도 하고 병감 정도만 있지 드러나지는 않는 경우 등이 있으면 추가적으로 황기 당귀 백작약 맥문동 시호 천궁 생지황 등의 약재를 가미하거나 그런 류의 처방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가장 대중화된 예는 많이 피로하고 약간의 감기기운이 느껴질 때 쌍화탕을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사먹곤 하는데, 한방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만들어진 처방이고, 체액의 부족을 돕고 근육의 피로도 풀어주는 좋은 약이다.

 

이것은 한의학 전반에 항상 내재되어 있는 대증적인 치료 이상으로, 그러한 증상들이 발현하기까지 그 사람에게 본래 내재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치료방법이다.

 

다시 쌍화탕을 예로 들면 묘한 감기기운, 오한 몸살이 있을 때 진통소염제를 먹을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피로가 누적이 된 상태였고, 소위 진이 빠진 상태를 한방적으로 간혈 혹은 기혈이 부족해진 상태로 변증하고 쌍화탕을 주는 행위 자체에 내재된 의미는 외부의 바이러스나 겉으로 드러난 증상 혹은 병명보다 환자의 몸의 상태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한의학은 여기서 한단계 더 발전해서 애초에 사람에 따라 병리패턴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 자체를 그 사람의 내재된 특성이 다르다고 보는 시각을 견지해서 체질이론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를테면 단순하게 이런 병리패턴이 있네 그러면 이런 약을 주자 정도의 차원에서 해도 충분한 문제였을 수 있는데, 이런 병리패턴이 자주 나타나는 사람들은 애초에 비슷한 특성이 다 있구만 해서 그 사람의 형상, 음성, 성격까지 패턴화 시키고 더 나아가 섭생과 약물 반응성까지 구분하여 치료에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몸살 감기에 누군가에게는 향부자 자소엽 육계를 주고 누군가에게는 갈근 석고 마황을 주고 하는 식을 단순히 병리패턴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 않고, 구태여 그 사람의 체질이 어떠하다 등의 관점까지 필요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보면 여기서 정말 한의학의 장점이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첫번째는 더 디테일한 병리적 패턴에 대한 시나리오를 예상해볼 수 있다. 체질론이 없는 상태에서 무수히 많은 병리패턴 중 어떤 것이 이 사람에게 발현될까 생각하는 것보다 이 사람은 이런 유형의 체질이라면 이런 패턴의 병리 패턴이 잘 나타나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훨씬 수월할 수 있다.

 

두번째는 첫번째의 연장선 상에서 미병 혹은 아주 가벼운 병감의 상태에서 미루어 짐작해서 미리 치료를 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현명하고 경험많은 한의사라면 이 사람이 식도염 증상을 보고 공황장애 증상을 말하지 않아도 찾을 수 있고, 또 생기기 이전에 관리하고자 약을 쓸 수 있다. 환자의 목소리만 들어도 저 사람에게 요로결석이나 전립선염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색을 살피고 형상만 보고도 생리 쪽 문제가 있지 않을까 먼저 환자에게 물어볼 수 있다. 똑같이 고지혈증 약을 먹어도 어떤 이는 스타틴 부작용이 좀 더 나타날 확률이 높을 수 있겠다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발생될 증상들을 예방하기 위해 하다못해 지금 드시고 있는 우루사 말고 코엔자임Q10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다. 똑같이 활맥을 잡아도 누군가에게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누군가에게는 현훈 오심 구토 증상을 먼저 물어봐 환자를 놀라게 하는 것들 등등

 

그 병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맞는 솔루션을 선제적으로 제안할 수 있고, 실제로 아무리 천지분간 못하는 한까들이 한무당이라 조롱하고, 아무런 지적 배경이나 근거도 없이 한의학은 비과학이라고 관념에 사로잡힌 친구들이 이 말 저 말 떠들어대도, 이미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기에게 잘맞는 한의사를 만나서 치료도 하고, 인생의 질을 보다 더 개선해가고 있다.

 

잡다한 비타민 미네랄 오메가3 루테인 밀크씨슬 프로폴리스 비오틴 홍삼 호박즙 흑염소와 같은 온갖 불필요한 건기식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아도 결국 느낌적 느낌으로 몸이 개선되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체불명의 검은 물이 아니라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한약은 절대적으로 당신에게 괜찮은 솔루션일 수 있다.

 

요새의 본업은 어쩌면 한의사이기 보다 다른 사업과 투자를 병행하느라 이도저도 아닌 인간이 아닌가 고심하곤 하지만.... 완전히 무질서한 듯 보여도 좀 더 확률적으로 높은 엣지를 찾고 그것을 조합하여 알파 수익을 내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고심하는 투자자의 마음과 치밀하게 분석하고 변증해서 가장 높은 확률의 병리패턴과 치료를 구사하고자 하는 한의사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다.

 

개체특이성보다 일반적인 증상이 더 강조될 때, 내재적인 원인보다 외부적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병은 솔직히 한의학 치료가 양방을 따라가기는 부족할 때가 많다. 당장 손이 잘려서 피가 철철 난다든지, 세균이 감염되어서 상처가 곪아터지고 있다든지, 애초에 자기 면역력으로 해볼 여지를 넘어서서 혈소판 수치가 떨어진다든지, 심장의 관상동맥이 막혀서 오늘 내일 하고 있다든지 하는 환자들에게 한의학 치료는 결코 첫번째 옵션으로 권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병이 심해지기 전에 미리미리 관리하고 싶고, 나의 어떤 부분이 약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고 부작용이 적은 방법으로 인체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궁극의 끝에는 한의학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내 건강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밑져야 본전으로 세컨드 오피니언 역할의 한의사 한 명쯤은 알아둬서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당신은 소양인이라 닭고기가 안 맞으니 앞으로 무조건 치킨 먹지 마같은 식의 과최적화 주화입마나, 오는 사람마다 오링테스트 하고 무조건 약 3제 먹어야 한다는 식의 뇌절 오는 수준의 진료가 아니라면 생각보다 한의학은 허접하지 않고 괜찮은 솔루션이다. 근육이 뭉치고 아플 때 침 맞고 피빼는 것도 썩 잘하는 게 한의학지만... 그 이상의 것이 한의학에 있음을 항상 말하고자 하는데 부덕하고 부족해서 고작 이 정도인 거 같다.

 

그러나 그런 방향을 지향하고 하루하루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