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란 무엇인가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절대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시스템의 이면에는 반드시 비용구조가 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는 모든 정책과 사고방식은 그저 뇌내망상이거나 지속적이지 않고, 근본적이지 않다. 누군가의 호혜나 희생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망가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십수년째 이러한 점들을 의도적으로 가리고 거짓된 복음으로 혹세무민하고자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필요 이상으로 사람을 추동하고 선동하고 비교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의 이면에는 이율배반적인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자기보다 못한 이들은 구원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선민의식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있는 그대로 그 사람과 나를 동등히 여기고 자유로운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특정 부류로 규정해서 도와야 할 사람, 불쌍한 사람, 불공평한 사회 탓에 희생된 사람이라는 자기만의 해석으로 바라본다.(혹은 그 자신을 그런 존재로 규정해버리기도 한다.) 또 그들은 이렇게 규정된 부류의 안티테제로서의 대상 역시 설정하는데 대체로 그들에 따르면 '더 가진 자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흔히 즐겨 차용하는 공정, 정의, 평등, 인간미 등의 포장과는 사뭇 거리가 먼 굉장히 유물론적인 구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아하고 정의로운 이미지의 탈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나는 혐오한다. 그런 인간들일수록 열등감이 말도 못하거나 도리어 과도한 자기애 탓에 타인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이 보여주는 가식에 정신이 홀려 이용당하지 않고자 한다면 우리 스스로 내면에 비뚤어지지 않은 올바른 자존감이 자리잡아야 한다. 욕심과 자존감을 구분하고 통제하고 영양가없는 인정과 명예를 구걸하지 않으면 비로소 듣고 싶은 이야기에 마음이 어두워지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된다.
인간이라면 그냥 탐욕과 두려움의 어느 사이에서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결정을 하는 게 자연스럽고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자기 스스로 그런 인간임을 알고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성공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기회를 스스로 찾고 쟁취하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인간인지 내면에서부터 내가 먼저 강하게 믿어야 한다. 왜곡된 자기애와 피해의식, 실존에 부합되지 않는 주입된 이상론에서 벗어나서 누군가의 호혜를 바라고 기대하는 삶을 강요받을 때 이것을 그 무엇보다 모욕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착한 사람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존경한다. 자신의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야말로 그 무엇도 구속할 수 없고 강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것을 항상 추구하는 편이다.